2009년 8월 18일 화요일

현대사의 거인 김 대 중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별을 잃었습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막을 수야 없는 일이지만,
못다한 그의 뜻이 아직도 요원한 시절이라 그 비통함이 더 합니다.
막막하고 답답한 시절
눈감는 순간까지 편치 않으셨을 생각을 하니...



부디 먼곳에서 이젠 편히들 쉬십시요.

1924. 1. 6. 전남 신안 하의도 가난한 소작농의 4남2녀중 차남으로 출생
1939. 3. 당시 10대 명문중 하나였던 목포상업학교 수석으로 입학
1944. 목포상고 졸업후 강제징집을 피하기위해 대학진학을 포기. 목포상선 입사
1945. 여운형의 건준위에 참여하나 좌익계열 주도라는 이유로 탈퇴
1945. 차용애와 결혼 / 슬하에 홍일, 홍업 형제
1948. 10 ~ 1950. 10 목포일보 사장
1951. 3. 흥국해운 사장
1952(?). 한국전쟁 당시 자본가, 반동분자로 우익인사들과 함께 목포교도소에 수감
총살 직전 탈주에 성공, 첫 번째 죽을 고비를 넘김
1954. 목포에서 무소속 출마 낙선
1957. 7. 가톨릭 영세 / 대부는 부통령 장면
1958. 인제에서 출마, 후보 등록 무효
1959. 인제 보선에 출마 낙선
1959. 연속된 낙선으로 인한 시련으로 부인 차용애 사별
1961. 5. 강원도 인제에서 민의원 당선 516으로 의원직 박탈. 이후 1971까지 6,7,8대 국회위원 역임
1962. 5. 이희호와 결혼 / 슬하에 홍걸
1963~1967. 민주당, 민중당, 신민당 대변인
1971. 신민당 대통령후보, 민주공화당 박정희에 패배
1971. 5.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기나 이 사고로 평생 다리를 절게됨
1972. 10. 유신으로 일본 망명, 미국등지에서 꾸준히 민주화 운동
1973. 8. 8. 일본에서 정보부요원에게 납치. 바다에 수장될 위기에서 구조. 이후 가택연금
1976. 3.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8년형, 투옥
1978. 12. 형집행정지로 석방, 가택연금
1980. 9. 당시 전두환 정권, 김대중에게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
1982. 12. 형집행정지로 석방, 미국 망명
1985. 귀국. 김영삼과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
1987. 12. 평화민주당 창당후 대통령 출마. 김영삼과 후보 단일화 실패. 노태우 당선
1988~1992. 제13, 14대 국회의원 당선
1991. 통합 민주당 창당
1992. 12. 제14대 대선 출마. 낙선. 정계은퇴
1993. 1년간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연구 및 강연활동
1994. 귀국. 아태평화재단 설립
1995. 7. 정계 복귀. 새정치 국민회의 창당
1997. 12. 김종필과 후보 단일화 성공. 제 15대 대통령 당선. 첫 정권교체 성공
2000. 6. 15. 김정일과 정상회담 후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2000. 10. 노벨 평화상 수상
2009. 8. 18. 사형선고 등 수차례의 죽을 고비, 2차례의 망명, 55차례의 가택연금, 6년여의 옥고를 치르며 대한민국의 통일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큰 별은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영면

댓글 2개:

  1. 노무현과 김대중이 떠났다...

    그저 나와 관계없는 두 명의 정객이 생물학적인 죽음을 맞은 것에 불과할까

    이 와중에 주가와 집값은 오르고 이명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40퍼센트가 넘는다고?

    한국, 참... 앞날이 캄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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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잘 지내지? TV에 뉴욕 빈소가 나올때 혹시나 눈에 불을켜고 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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