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5일 토요일

에드워드 스타이컨

With Studio Camera, 1917 - Edward Steichen

Brooklyn Bridge, 1903

The Pond - Moonlight, 1904

In Memoriam, 1904

Steeplechase Day, 1905

The Flatiron, 1905

After Attack, 1918

The Spiral Shell, 1921.

Sunday Night, 1925



Mature Sunflower 1920-1961

Three Apples, 1921


Eugene O. Neill, 1926

Gary Cooper, 1928


Elizabeth Meyer, 1920

Elizabeth Berger

Winifred Lenihan, 1924

Princess Irina Alexandrovna Yusupov, 1924

Gloria Swanson, 1924

Kendall Lee, 1925


Marion Morehouse, 1926

Greta Garbo, 1928

Marlene Dietrich, 1931

Anna May Wong, 1931

Anna May Wong, 1931

Ilka Chase, 1933

Norma Shearer, 1935

Norma Shearer, 1935

White, 1935

The Lily Pond, 1935

Edward Steichen at home in Redding, 1969



"사진은 감정의 전 음역대가 쓰여있는 인간의 얼굴, 인류가 물려 받은 하늘과 땅의 아름다움 그리고 인류가 만들어낸 부와 혼란을 기록하는 것이다."

1879. 3. 27 : 룩셈부르크 태생
1882 : 미국으로 이주
1893 : 상업 석판가의 견습생, 그림을 공부했으나 사진으로 전환
1900 : 이미 여러 점의 사진을 전시, 그의 초기 사진들은 화가로서의 영향이 컸다.
인화지나 음화에 상을 제거하거나 첨가하기 위해 염화은과 다른 화학약품들을 문질러서 부드럽고 흐릿한 동판화나 어슴프레한 수채화 같은 사진을 만들었다.
1902 : 사진분리파(Photosecession Group) 결성,
그들은 사진을 기록하거나 점차 장식화하려는 하나의 기술에서 자유롭게 실험하고 탐구하는 예술로 변형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아무런 조작 없이 음화로부터 인화된 평범한 대상과 일상적인 장면들을 찍은 사진들이 비밀스러운 방법에 의해 인화된 인위적으로 구성된 사진들보다 훨씬 더 심미적인 호소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1905 : 뉴욕시 5번가 291번지에 '291'로 불리웠던 자신들의 화랑 'Little Galleries'를 열었다.
1910 : 파리에서 공부할때 사귄 로댕을 비롯해 마티스, 크레이그, 웨버, 세잔느, 피카소 등을 전시.
1918 : 1차 세계대전중 미 공군 사진부를 지휘하다 공군 중령으로 퇴역.
전쟁중 그가 찍었던 사진의 유일한 목적은 사실주의.
이후 그의 모든 예술적 표현방식이 변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1923~1938 : 인물사진과 광고용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스투디오 개업.
이후 '보그', '배니티 페어'등의 수석 사진사가 됨.
1941 : 진주만 공격 직후 사진전 'Road to Victory'
1944 : 사진전 'Power in the Pacific'
1947~1962 : 뉴욕 현대미술관의 사진부장, '인간 가족 The Family of Man' 전시 기획
1955 : 68개국에서 273명의 작가가 응모한 200만여점의 작품 중 503점을 뽑아 전시.
세계적으로 총 900만명 이상 관람.
1973. 3. 25 : 미국 코네티컷에서 사망.

"오늘날 사진을 생명력있는 예술로 만든 것은 바로 사진작가 개개인의 독특한 시각에 근거를 둔 다양성이다"

2009년 7월 22일 수요일

우린 온두라스가 되는거야

결국 미디어법이고 금융지주법이고 모두 통과되었다. 그들을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해준 고마운 분들에 대한 보은을 보란듯이 해 내었고, 그럼 또 저들은 그들이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게 더 큰 보은을 하겠지. 이렇게 대한민국은 가진자 몇 놈들의 손아귀에서 쥐락펴락 하게 되었다. 언론이 모두 장악되고 자본시장마저 그들 손아귀에서 놀아난다면, 경기도 교육청에서 일어난 돈없으면 100% 굶어야 된다는 현실이 우리 모두의 목전에 쉽게 오고 말것이다. 설마설마 했던 내가 그르다는 생각밖에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것은 국회에서 넥타이를 풀어해치고 자신들만의 필살기로 법을 통과시킨 쓰레기들도, 저들을 조종하고 있는 조중동의 깡패놈들도, 그 뒤에서 조용히 돈을 쥐고 흔드는 삼성 일가의 악마들도 아니다. 그 외 나머지 저들을 지지하고 헤벌레 침 질질 흘리면서 몸 받쳐 총알받이를 하는 인간들, 너희들은 도대체 뭐냐. 아, 암울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여, 희망찬 ㅆㅂ 명박의 하늘이여 ~

아, 저 더러운 쓰레기 쓰레기들...


자, 우린 아시아의 '온두라스'로 가는거다..

2009년 7월 14일 화요일

여기보다 어딘가에


밀린 숙제처럼 본 영화였고, 영화를 관통하며 내리누르는 그 답답함이 어쩌면 나의 그것인지도 모른다는 슬픔이 밀려왔다. 어쩌면 나의 이십대에 저렇게 사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면 좀 더 상황이 좋아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쓸쓸함이 밀려온 밤이었다. 꾸드꼬헤 한잔에 거의 폭풍우를 맞으며 돌아온 밤. 물난리가 많이 났겠다.



참고로 영화의 영어제목은 Nowhere To Turn 이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민홍씨와 은지씨, 원상이 그리고 유앤미블루의 방준석 등등은 내게 반가운 부분이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주연을 맡은 유하준은 mbc 개그맨 유정승을 닮았다.

2009년 7월 9일 목요일

A Dream Within A Dream

- Edgar Allan Poe


Take this kiss upon the brow!

And, in parting from you now,

Thus much let me avow-

You are not wrong, who deem

That my days have been a dream;

Yet if hope has flown away

In a night, or in a day

In a vision, or in none,

Is it therefore the less gone?

All that we see or seem

Is but a dream within a dream.


I stand amid the roar

Of a surf-tormented shore

And I hold within my hand

Grains of the golden sand-

How few! Yet how they creep

Through my fingers to the deep,

While I weep- while I weep!

O God! can I not grasp

Them with a tighter clasp?

O God! can I not save

One from the pitiless wave?

Is all that we see or seem

But a dream within a dream?





꿈 속의 꿈

-애드가 앨런 포우


이 키스를 이마에 받아라!

이제 너를 떠나면서

이 정도만 말하련다

내 삶이 꿈에 불과했다는 네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희망이

밤에, 혹은 낮에,

환상 속에서, 혹은 어둠 속에서 날아가 버렸다고 해서

더 적게 사라진 것이냐?

우리가 보는 것이나 보이는 것 모두

꿈 속의 꿈에 불과한 것을.


나는 파도에 고문당한 해변가의

으르렁 소리 한 가운데에 서서

손 안에는

금빛 모래 알갱이들을 부여 잡고 있다

이 얼마나 적은가! 그러나 얼마나 잘 빠져나가는가

나의 손가락 사이를 통해 저 심연으로 말이다,

내가 울고 있는 동안- 내가 울고 있는 동안!

오 신이시여! 내가 더 세게 쥔다해도

그것들을 잡을 수는 없는 겁니까?

오 신이시여! 저 무자비한 물결로부터

하나라도 남길 수는 없는 겁니까?

우리가 보는 것이나 보이는 것 모두가

꿈 속의 꿈에 불과하다는 말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