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1일 월요일

고래동무 후원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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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이는 뉴욕에 있고..

음... 그럼 누구를 불러모을까?

2009년 8월 18일 화요일

현대사의 거인 김 대 중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별을 잃었습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막을 수야 없는 일이지만,
못다한 그의 뜻이 아직도 요원한 시절이라 그 비통함이 더 합니다.
막막하고 답답한 시절
눈감는 순간까지 편치 않으셨을 생각을 하니...



부디 먼곳에서 이젠 편히들 쉬십시요.

1924. 1. 6. 전남 신안 하의도 가난한 소작농의 4남2녀중 차남으로 출생
1939. 3. 당시 10대 명문중 하나였던 목포상업학교 수석으로 입학
1944. 목포상고 졸업후 강제징집을 피하기위해 대학진학을 포기. 목포상선 입사
1945. 여운형의 건준위에 참여하나 좌익계열 주도라는 이유로 탈퇴
1945. 차용애와 결혼 / 슬하에 홍일, 홍업 형제
1948. 10 ~ 1950. 10 목포일보 사장
1951. 3. 흥국해운 사장
1952(?). 한국전쟁 당시 자본가, 반동분자로 우익인사들과 함께 목포교도소에 수감
총살 직전 탈주에 성공, 첫 번째 죽을 고비를 넘김
1954. 목포에서 무소속 출마 낙선
1957. 7. 가톨릭 영세 / 대부는 부통령 장면
1958. 인제에서 출마, 후보 등록 무효
1959. 인제 보선에 출마 낙선
1959. 연속된 낙선으로 인한 시련으로 부인 차용애 사별
1961. 5. 강원도 인제에서 민의원 당선 516으로 의원직 박탈. 이후 1971까지 6,7,8대 국회위원 역임
1962. 5. 이희호와 결혼 / 슬하에 홍걸
1963~1967. 민주당, 민중당, 신민당 대변인
1971. 신민당 대통령후보, 민주공화당 박정희에 패배
1971. 5.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기나 이 사고로 평생 다리를 절게됨
1972. 10. 유신으로 일본 망명, 미국등지에서 꾸준히 민주화 운동
1973. 8. 8. 일본에서 정보부요원에게 납치. 바다에 수장될 위기에서 구조. 이후 가택연금
1976. 3.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8년형, 투옥
1978. 12. 형집행정지로 석방, 가택연금
1980. 9. 당시 전두환 정권, 김대중에게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
1982. 12. 형집행정지로 석방, 미국 망명
1985. 귀국. 김영삼과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
1987. 12. 평화민주당 창당후 대통령 출마. 김영삼과 후보 단일화 실패. 노태우 당선
1988~1992. 제13, 14대 국회의원 당선
1991. 통합 민주당 창당
1992. 12. 제14대 대선 출마. 낙선. 정계은퇴
1993. 1년간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연구 및 강연활동
1994. 귀국. 아태평화재단 설립
1995. 7. 정계 복귀. 새정치 국민회의 창당
1997. 12. 김종필과 후보 단일화 성공. 제 15대 대통령 당선. 첫 정권교체 성공
2000. 6. 15. 김정일과 정상회담 후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2000. 10. 노벨 평화상 수상
2009. 8. 18. 사형선고 등 수차례의 죽을 고비, 2차례의 망명, 55차례의 가택연금, 6년여의 옥고를 치르며 대한민국의 통일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큰 별은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영면

2009년 7월 25일 토요일

에드워드 스타이컨

With Studio Camera, 1917 - Edward Steichen

Brooklyn Bridge, 1903

The Pond - Moonlight, 1904

In Memoriam, 1904

Steeplechase Day, 1905

The Flatiron, 1905

After Attack, 1918

The Spiral Shell, 1921.

Sunday Night, 1925



Mature Sunflower 1920-1961

Three Apples, 1921


Eugene O. Neill, 1926

Gary Cooper, 1928


Elizabeth Meyer, 1920

Elizabeth Berger

Winifred Lenihan, 1924

Princess Irina Alexandrovna Yusupov, 1924

Gloria Swanson, 1924

Kendall Lee, 1925


Marion Morehouse, 1926

Greta Garbo, 1928

Marlene Dietrich, 1931

Anna May Wong, 1931

Anna May Wong, 1931

Ilka Chase, 1933

Norma Shearer, 1935

Norma Shearer, 1935

White, 1935

The Lily Pond, 1935

Edward Steichen at home in Redding, 1969



"사진은 감정의 전 음역대가 쓰여있는 인간의 얼굴, 인류가 물려 받은 하늘과 땅의 아름다움 그리고 인류가 만들어낸 부와 혼란을 기록하는 것이다."

1879. 3. 27 : 룩셈부르크 태생
1882 : 미국으로 이주
1893 : 상업 석판가의 견습생, 그림을 공부했으나 사진으로 전환
1900 : 이미 여러 점의 사진을 전시, 그의 초기 사진들은 화가로서의 영향이 컸다.
인화지나 음화에 상을 제거하거나 첨가하기 위해 염화은과 다른 화학약품들을 문질러서 부드럽고 흐릿한 동판화나 어슴프레한 수채화 같은 사진을 만들었다.
1902 : 사진분리파(Photosecession Group) 결성,
그들은 사진을 기록하거나 점차 장식화하려는 하나의 기술에서 자유롭게 실험하고 탐구하는 예술로 변형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아무런 조작 없이 음화로부터 인화된 평범한 대상과 일상적인 장면들을 찍은 사진들이 비밀스러운 방법에 의해 인화된 인위적으로 구성된 사진들보다 훨씬 더 심미적인 호소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1905 : 뉴욕시 5번가 291번지에 '291'로 불리웠던 자신들의 화랑 'Little Galleries'를 열었다.
1910 : 파리에서 공부할때 사귄 로댕을 비롯해 마티스, 크레이그, 웨버, 세잔느, 피카소 등을 전시.
1918 : 1차 세계대전중 미 공군 사진부를 지휘하다 공군 중령으로 퇴역.
전쟁중 그가 찍었던 사진의 유일한 목적은 사실주의.
이후 그의 모든 예술적 표현방식이 변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1923~1938 : 인물사진과 광고용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스투디오 개업.
이후 '보그', '배니티 페어'등의 수석 사진사가 됨.
1941 : 진주만 공격 직후 사진전 'Road to Victory'
1944 : 사진전 'Power in the Pacific'
1947~1962 : 뉴욕 현대미술관의 사진부장, '인간 가족 The Family of Man' 전시 기획
1955 : 68개국에서 273명의 작가가 응모한 200만여점의 작품 중 503점을 뽑아 전시.
세계적으로 총 900만명 이상 관람.
1973. 3. 25 : 미국 코네티컷에서 사망.

"오늘날 사진을 생명력있는 예술로 만든 것은 바로 사진작가 개개인의 독특한 시각에 근거를 둔 다양성이다"

2009년 7월 22일 수요일

우린 온두라스가 되는거야

결국 미디어법이고 금융지주법이고 모두 통과되었다. 그들을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해준 고마운 분들에 대한 보은을 보란듯이 해 내었고, 그럼 또 저들은 그들이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게 더 큰 보은을 하겠지. 이렇게 대한민국은 가진자 몇 놈들의 손아귀에서 쥐락펴락 하게 되었다. 언론이 모두 장악되고 자본시장마저 그들 손아귀에서 놀아난다면, 경기도 교육청에서 일어난 돈없으면 100% 굶어야 된다는 현실이 우리 모두의 목전에 쉽게 오고 말것이다. 설마설마 했던 내가 그르다는 생각밖에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것은 국회에서 넥타이를 풀어해치고 자신들만의 필살기로 법을 통과시킨 쓰레기들도, 저들을 조종하고 있는 조중동의 깡패놈들도, 그 뒤에서 조용히 돈을 쥐고 흔드는 삼성 일가의 악마들도 아니다. 그 외 나머지 저들을 지지하고 헤벌레 침 질질 흘리면서 몸 받쳐 총알받이를 하는 인간들, 너희들은 도대체 뭐냐. 아, 암울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여, 희망찬 ㅆㅂ 명박의 하늘이여 ~

아, 저 더러운 쓰레기 쓰레기들...


자, 우린 아시아의 '온두라스'로 가는거다..

2009년 7월 14일 화요일

여기보다 어딘가에


밀린 숙제처럼 본 영화였고, 영화를 관통하며 내리누르는 그 답답함이 어쩌면 나의 그것인지도 모른다는 슬픔이 밀려왔다. 어쩌면 나의 이십대에 저렇게 사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면 좀 더 상황이 좋아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쓸쓸함이 밀려온 밤이었다. 꾸드꼬헤 한잔에 거의 폭풍우를 맞으며 돌아온 밤. 물난리가 많이 났겠다.



참고로 영화의 영어제목은 Nowhere To Turn 이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민홍씨와 은지씨, 원상이 그리고 유앤미블루의 방준석 등등은 내게 반가운 부분이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주연을 맡은 유하준은 mbc 개그맨 유정승을 닮았다.

2009년 7월 9일 목요일

A Dream Within A Dream

- Edgar Allan Poe


Take this kiss upon the brow!

And, in parting from you now,

Thus much let me avow-

You are not wrong, who deem

That my days have been a dream;

Yet if hope has flown away

In a night, or in a day

In a vision, or in none,

Is it therefore the less gone?

All that we see or seem

Is but a dream within a dream.


I stand amid the roar

Of a surf-tormented shore

And I hold within my hand

Grains of the golden sand-

How few! Yet how they creep

Through my fingers to the deep,

While I weep- while I weep!

O God! can I not grasp

Them with a tighter clasp?

O God! can I not save

One from the pitiless wave?

Is all that we see or seem

But a dream within a dream?





꿈 속의 꿈

-애드가 앨런 포우


이 키스를 이마에 받아라!

이제 너를 떠나면서

이 정도만 말하련다

내 삶이 꿈에 불과했다는 네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희망이

밤에, 혹은 낮에,

환상 속에서, 혹은 어둠 속에서 날아가 버렸다고 해서

더 적게 사라진 것이냐?

우리가 보는 것이나 보이는 것 모두

꿈 속의 꿈에 불과한 것을.


나는 파도에 고문당한 해변가의

으르렁 소리 한 가운데에 서서

손 안에는

금빛 모래 알갱이들을 부여 잡고 있다

이 얼마나 적은가! 그러나 얼마나 잘 빠져나가는가

나의 손가락 사이를 통해 저 심연으로 말이다,

내가 울고 있는 동안- 내가 울고 있는 동안!

오 신이시여! 내가 더 세게 쥔다해도

그것들을 잡을 수는 없는 겁니까?

오 신이시여! 저 무자비한 물결로부터

하나라도 남길 수는 없는 겁니까?

우리가 보는 것이나 보이는 것 모두가

꿈 속의 꿈에 불과하다는 말인가요?

2009년 6월 30일 화요일

He's gone

Neil Young - Light A Candle

아~ 이 지리한 1년을 어찌 보내느뇨...

2009년 6월 16일 화요일

포털 반대

대한민국의 모든 포털에서 검색서비스만 제공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허접스런 뉴스 제공이 과연...



2009년 6월 3일 수요일

마더


(주의 : 스포일러가 있을수도 있습니다.)
신림동 청수장 여관 여인 살인사건에 현직 순경이 살인범으로 몰려 1심과 2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대법원에 상고 중에 살인 진범이 사건 1년만에 붙잡혀 누명을 벗게 된 사건이 있었다. 김ㅇㅇ 순경 사건.

당시 김순경은 오전 3시 30분쯤 이양과 함께 투숙했다가 오전 7시쯤 여관을 나가 근무하고 10시쯤 돌아와 이양이 숨진 사실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었다.

김순경은 수사과정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폭로하였다. 이 사건은 판·검사, 경찰 모두가 정황증거만을 과신했고, 검찰의 무리한 수사관행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그는 당시 동료 경찰관들이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혐의를 벗기 어렵다. 자백을 하면 가벼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설득하자 이에 못 이겨 시인하고 말았다고 했다.

그러나 92년 11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청수장 여관 이모양(당시 18세. 술집여종업원)피살 사건의 진범 서모군(19세 재수생)이 '우연히' 붙잡혔다. 이에 따라 김순경(27세, 관악경찰서. )은 풀려났다. 진범 서군은 고교졸업 후 가출하여 사건 당일 92년 11월 29일 오전 7시 30분쯤 잠자기 위해 여관에 들어가 우연히 이양의 방에 들어갔으나 핸드백을 훔치려는 순간 이양이 소리를 질러 살해했다고 경찰은 발표했었다.

2009년 5월 31일 일요일

Wrestler, Cinderella 그리고 노무현

이 놈들은 한마디로 그가 쪽팔렸던 거다. 학력도 배경도 재산도 무엇하나 변변한 것이 없던 그가 대통령까지 되었다는 사실부터 지긋지긋하게 인정하기 싫었을테고 그런 그가 자신들의 위치에 함께 혹은 그 위에 있었던게 쪽팔렸던 거다. 그래서 사사건건 비웃고 놀려데며 린치를 날렸던 거다. 조중동이 그 선봉이었다는건 이제 시장통의 꼬맹이 양아치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 그런 사실을 알고도 우린 그를 더 제대로 알려하지 않았고 지켜주지 못했다. 결국 우리도 쓰레기가 되어가고 있었던 거겠지. 십만원 이마트 상품권 한장에 우린 조중동의 개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랬던 우리에게 그는 당당히 돌아왔지만 그건 역설적이게도 존재로서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부재로 그 존재를 아주 강하게 각인시켜줬다. 가슴깊이 슬픔이 남은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을까.

...


그렇게 슬픈 일주일을 보내고 밀어두었던 The Wrestler 디비디를 틀었다. 이젠 노쇠한 전설의 'Ram' 이 힘겨운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울리던 노래가 날 더 슬프게 한다.

... ...

Don't know what you got till it's gone
Don't know what it is I did so wrong

... ...

2009년 5월 24일 일요일

Sarabande - Handel

대통령 노무현


비통하고 허망함에 주말을 보내고, 눈물을 닦는다.

그렇게 가시면 안되는데..



아, 더러운 세월이여, 불행한 시대여 ~



2009년 5월 20일 수요일

대법관 신영철

신영철 대법관의 출생 및 학력
1954년 공주 생
대전고등학교
서울대 법대
조지타운대 비교법학 석사

대법관 임명 이전까지의 세간의 평판 : 매우 뛰어나고 소신 있는 판사
기존의 판례에 얽매이지 않고 치밀한 법리 해석에 따라 판결
하급심의 판결을 뒤집는 소신판결을 많이 내림
법관에 대한 자부심과 대법관이 되려는 야심이 상당히 강함
내성적인 성격에 철저한 자기관리로 변호사나 동료들로부터 거리감을 느끼게 하기도 함
원칙과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판결로 주목 받음
법원장까지 엘리트코스를 거치며 초고속 승진을 거듭, 승승장구함

그러나 대법관 임명에 3번 좌절하면서 급변함

주요 경력 및 화제가 된 판례 (핵심 엘리트 코스는 밑줄 처리)
1976 사시합격
1981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
이후 서울민사지법,대구지법,청주지법 근무

1988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 겸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 법원 행정처 근무는 행정능력도 겸비하고 장래 엘리트코스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함

1989 서울고등법원 판사
1991 대법원 재판연구관
1992 청주지법 부장판사
이후 언론중재위원회, 사업연수원교수
- 1994 조계종 사태시 종교관련 재판이라는 부담에도 소신판결로 사태해결
- 낙태관련 생명존중과 여성, 장애인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판결로 주목받음

1998 서울지법 부장판사
2000 대전지법 수석부장판사 직대
- 조직폭력배에 대해 가차 없이 무거운 형량을 구형, 악명 높은 판사로 불림

2001 서울고법 부장판사 겸 대법원장 비서실장
- 한총련 활동에 대해 파격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관용적인 판결을 내림
- 탈법적 기업운영에도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 동아그룹 회장 최원석에 대한 실형선고 및 법정구속을 판결
-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5.18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2005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 인신구속 사무처리 기준을 만들어 구속남발을 줄이고 피의자 방어권을 증진시킴

2006 수원지법 법원장
- 대법관 제청자문위 추천 1순위였으나 최종 임명에서 탈락

2008 서울중앙지법 법원장
- 같은 해 두 차례나 대법관 후보 1순위로 추천되나 탈락. 대내외에서 인정 받는 경력과 역량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인지 대법관 임명에서 밀리고 있음을 보여줌. 이용훈 대법원장과 잘 맞지 않는다는 평이 난무함.

2009.2 3전4기로 대법관 임명됨
- 임명 당시 청문회를 거치면서 야당으로부터도 최악을 피한 차선의 선택으로 평가됨. 청문회 당시만 해도 재판 개입 사건이 소문만 있을 뿐 공론화 되지 않은 단계였음. (출처 : 행복연구소)

요사이 쪽팔린 일들이 좀 있지만 귀막고, 눈막고, 입막고 조금만 더 참자.. 끄응~ (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지나친 권력욕이 결국 멀쩡한 사람을 창피함도 모르는 파렴치한 破廉恥漢 으로 만들어 버리는구나.

어이없음. 푸훗.